캐나다산 위스키·보드카·진 등 미국 수입 금지
생산보다 판매·유통 인력 많은 미국이 더 큰 타격 가능성
캐나다 브랜드 상당수 美·다국적기업 소유…“결국 미국 기업도 피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와의 무역전쟁을 확대하며 캐나다산 위스키와 보드카, 진 등 증류주의 미국 수입을 금지한 가운데 이번 조치가 오히려 캐나다보다 미국의 일자리와 주류업계에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캐나다를 겨냥한 일련의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캐나다산 증류주의 미국 수입을 금지했다. 양국 간 관세전쟁이 상품별 수입 금지 조치로까지 확대되면서 국경을 넘나들며 긴밀하게 연결돼 있던 북미 주류산업도 직격탄을 맞게 됐다.
주류 전문 작가이자 컨설턴트인 스티븐 보몬트는 이번 조치로 캐나다에서도 일부 일자리가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실제 일자리 감소 규모는 미국이 더 클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증류주는 생산 과정 자체에 필요한 인력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반면 제품이 시장에 나온 뒤 이를 판매하고 홍보·마케팅하며 유통하는 과정에는 훨씬 많은 인력이 필요하고, 캐나다산 주류의 미국 판매와 관련된 이들 일자리 상당수가 미국에 있기 때문이다.
결국 캐나다에서 술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캐나다에서 만든 술을 미국에서 팔지 못하게 하는 조치인 만큼 생산지인 캐나다뿐 아니라 이를 수입하고 유통·판매해 온 미국 기업과 근로자에게도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캐나다산이라고 해서 모두 캐나다 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보몬트는 캐나다의 주요 증류주 업체 가운데 상당수가 대형 다국적기업의 계열사 또는 사업부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 이번 수입 금지 조치가 순수 캐나다 기업만을 겨냥한 제재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캐나다 위스키 전문 작가 블레어 필립스 역시 캐나다에서 생산되는 위스키 브랜드를 소유하거나 미국에서 유통하는 미국 기업들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블랙 벨벳(Black Velvet)과 시그램스 VO(Seagram's VO)다. 캐나다에서 생산되는 대표적인 위스키지만 미국 기업이 브랜드를 소유하거나 미국 유통망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수입이 막히면 미국 내 관련 사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 주류업계로서는 이번 조치가 더욱 부담스럽다. 미국산 주류업체들은 이미 캐나다와의 무역갈등 과정에서 일부 캐나다 주정부의 주류 판매망에서 미국산 제품이 퇴출되거나 판매가 제한되는 등 상당한 압박을 받아왔다.
여기에 젊은 소비자들의 음주 감소와 소비 습관 변화까지 겹치면서 주류업계가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캐나다산 제품의 미국 수입 금지까지 더해진 것이다.
캐나다 증류주업체들을 대표하는 스피리츠 캐나다(Spirits Canada)의 칼 브리커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조치에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브리커 CEO는 캐나다 주류업계에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라며 미국과 캐나다가 가능한 한 빨리 협상 테이블로 돌아가 갈등을 해결하고 북미 지역의 주류 자유무역을 회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수입을 금지한다고 해서 미국 소비자들의 캐나다산 위스키에 대한 수요까지 사라질지는 미지수다.
보몬트는 미국 일부 지역에서는 캐나다산 위스키의 인기가 버번이나 테네시 위스키 등 미국을 대표하는 제품을 능가할 정도라며 소비자들이 하루아침에 자신들이 즐기던 브랜드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가 캐나다 경제에 압박을 가하기 위해 꺼낸 ‘캐나다산 술 수입 금지’ 카드가 예상과 달리 미국 기업과 유통업체, 주류 판매업 종사자들에게도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과 캐나다의 주류산업은 수십년간 하나의 시장처럼 공급망과 소유구조, 유통망이 얽혀 있다. 국경에서 캐나다산 술을 막더라도 그 술을 팔아 돈을 벌던 미국 기업과 근로자까지 보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이번 무역전쟁의 또 다른 딜레마로 떠오르고 있다. <뉴스/사진: 밴쿠버 교차로>